- 개강일: 12월 5일 개강
- 시간: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10시, 4주 과정
- 장소: PIE(스튜디오 파이)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16 펠릭스빌딩 6층]
- 튜터: 돈선필
- 수강료: 40만 원(학생 할인 50%)
- 수강 인원: 최소 4명 최대 10명
이 글을 읽기 전에 천천히 주변을 둘러봅시다. 무엇이 보이나요? 아마 우리가 만들어낸 다양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여행지에서 구입한 근사한 찻잔이나 요즘 유행하는 모자가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애정하는 캐릭터의 굿즈나 큰마음 먹고 구입한 카메라가 일 수도 있겠네요. 이런 사물을 바라보면 지난 추억이나 특별한 정동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거나 기념할 때, 새로운 감정을 끌어내거나 낯선 경험을 하고 싶다면 ‘환기의 방아쇠’로 사물을 사용합니다. 누구나 애정 어린 물건이 하나쯤은 있습니다. 거기에는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요.
구현화 具現化 materialization
우리는 언어만을 사용해 생각하는 것 같지만 감정과 감각에는 언어화하기 힘든 어떤 모양새가 있다는 느낌을 외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분 나쁜 감각은 좀 더 뾰족한 것 같고 행복한 감정은 둥그스름하고 푹신한 모양일 것만 같습니다(『THOUGHT-FORMS』, BY ANNIE BESANT and C.W. LEADBEATER). 우리는 규정하기 힘든 추상적 개념에도 형태를 부여하곤 합니다. 사랑에는 하트❤️를 죽음에는 해골💀을. 이처럼 우리는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아주 구체적인 모양새로 세공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사용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이런 힘을 ‘구현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서브?컬처
‘구현화’는 ‘서브컬처’라 불리는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류 문화의 대항마 역할을 담당하며 젊고, 새롭고, 소수가 향유하는 문화 전반을 서브컬처라 정의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서브컬처를 이해하는 것은 젊은 세대의 생각을 가늠하고 동시대를 명료히 알게 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브컬처는 2000년대 이후로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처럼 대규모 산업 시스템과 연계된, 이른바 ‘오타쿠 문화’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로 변신하여 대중성을 확보했습니다. 이 때문에 서브컬처를 소수가 향유하는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써 부족함이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인기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를 관찰해 봅시다. 그들의 얼굴 생김새, 머리모양, 의복의 모습은 대표적인 ‘구현화’ 현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캐릭터와 관련된 파생상품부터 소비자가 생산자로 변모하는 2차 창작까지 ‘구현화’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우리의 삶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구현화의 세계’는 감각과 감정, 시간과 기억 같은 모호한 상태를 구체적인 사물로 다루는 방법에 대한 해설 강좌입니다. 여기에 오타쿠적 관점을 약간 더한 미술가의 견해를 공유하며 여러 서브컬처 장르를 경유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구현화의 세계’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더 풍요로운 사유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구현화의 세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 소비지향적 사회 풍조와 기대감소 시대 속에서 가능한 창작이란 무엇일까요?
- 고해상도 콘텐츠가 난무하는 지금, 현실을 유사하게 재현하는 방법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 대량생산 되는 공산품을 동시대의 유행어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 말과 글보다는 물건을 사용하는 투박하고 두루뭉술한 의사소통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 ‘구현화의 세계’는 4주간 진행됩니다. 매주 다른 소재와 내용을 함께 분석하는 시간입니다.
1회: 텅 빈 얼굴
- 자기소개의 과정을 통해 ‘구현화의 세계’에서 얻고 싶은 바를 공유해봅니다.
- 영상 ⟨자기소개⟩를 함께 시청하고 ‘구현화의 세계’에서 제안하는 논점에 대해 고민해 봅니다.
- 캐릭터를 분석하는 2가지 방법론을 이해하고 재현과 추상의 경계점을 생각해 봅니다.
- ‘구현화’라는 현상을 멋지게 활용한 사례 3가지를 알아봅니다.
2회: 합성수지로 만든 언어
- ‘피규어’란 무엇인지 함께 정의하고 조형 방식의 특징을 살펴봅니다.
- 영상<스크린세이더>, <인터스트리얼 미소녀>를 함께 감상합니다.
- 피규어의 생산과정과 이를 둘러싼 사회현상을 동시대 언어의 관점으로 해석해 봅니다.
- 세계 최대의 피규어 이벤트인 ‘원더페스티벌’에 대해 간단히 알아봅니다.
3회: 재현을 위해 가공한 사물
- 어린이를 위한 영상 장르인 ‘특촬’의 특이점을 짚어봅니다.
- 영상<하카세 박사의 마테리아 파티>를 함께 감상합니다.
- 영화와 게임 산업에서 추구하는 ‘현실성(reality)’의 맹점과 보완점을 살펴봅니다.
- 새로운 기술을 창작물에 적용할 때 고려하면 좋은 태도에 관해 논의해 봅니다.
4회: 가면보다 무겁고 허물보다 두터운 것
- ‘버추얼 유튜버’와 ‘바비니쿠’를 배출하게 된 동시대의 사회적 규범을 알아봅니다.
- 코스프레 문화와 퍼리 커뮤니티의 교집합을 분석합니다.
- 약간 어설프면서도 구체적인 형태를 동반하는 ‘크로스 드레싱’에 대해 논의합니다.
- 자신이 생각하고 발견한 구현화 현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참고하세요!
마지막 4회차 후반부는 자신이 생각하는 구현화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유종의 미를 위한 기말 과제라고 생각해 주세요.
‘구현화의 세계’는 이런 분께 추천해 드립니다.
- 오타쿠는 아니지만 여러 서브컬처 전반에 대해 흥미와 관심이 넘치시는 분.
- 평소 망상을 자주하고 자기 관심사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던 분.
- 오타쿠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널리 활용하고 싶은 분.
-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은 분.
- 『헌터x헌터』가 출판만화의 으뜸이라 생각하는 분.
돈선필?
서울에서 미술을 하며 지내고 있다. 96년 겨울, 깜짝선물로 받게 된 플레이스테이션 덕분에 콘솔 게이머로 청소년기를 보낸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가 시작될 때쯤 어쩌다 알게 된 피규어에 흥미를 느끼며 소박한 수집가의 삶을 시작한다. 30대가 되고 나서야 변덕스러운 관심사 속에서 끝까지 생존해 있던 피규어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최근에는 작가로 불린다. 언어와 사회의 모습을 ‘구현화(Materialization)’의 관점으로 해석한다. 특히 서브컬처 전반에 대한 애정을 비평적 도구로 사용하여 입체물과 영상을 제작한다. 그중 피규어가 만들어 낸 각종 사회현상과 함축된 서사, 리얼리티의 욕망, 조형물로서의 자기 완결성 등 복합적 단면을 탐구하고 이를 동시대 집단이 공유하는 인식 언어로 설명한다.
⟨프록시⟩는 리움미술관에서 2024년에 진행된 《드림 스크린》전에서 선보인 작업이다. 근사한 원목 테이블이 놓여있는 촬영 현장이나 무대 장치를 흉내 낸 작업이다. 수작업으로 제작한 조형물과 출처를 알 수 없는 골동품, 구하기 쉽지 않은 레진 피규어와 현대미술 작품이 공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업 제목처럼 ‘중개자’로서 작업의 외부에서 내부로 관객을 안내하는 거대한 모형으로 보면 좋다. 전시 기간 중 비정기적으로 홀로 치킨을 먹는 퍼포먼스⟨HA.GU.RE.RU⟩가 진행된다.
⟨프록시⟩제작의 원인과 결과가 파편적으로 모여 있는 이미지-텍스트 모음이다. 작업을 위한 레퍼런스와 제작 동기에 대한 이유, 짧은 여행에서 발견한 공간의 모양, ‘이바쇼’라 부르는 감각의 형태에 대한 소고가 나열되어 있다.
보편적인 유령 분장 이미지를 빌려온 조형물이다. 일반적인 성인 신장의 ½ 비율로 제작되었으며 머리 위에는 빈티지 필름 무비 카메라가 달려 있다. 배달업에 종사하는 라이더의 외관을 참조하여 도시 생태계 속에서 활발하게 암행하는 관찰-기록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피규어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배달 음식 포장 봉투로 추정된다.
이 영상은 2023년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진행된 동명의 전시 《인더스트리얼 미소녀》에서 선보인 작업이다. 영상의 주인공은 ‘엔지니어J’란 인물로 금형을 설계하는 기술자다. 이름 모를 원형사에게 전달받은 원형을 바탕으로 금형을 설계해야 하는 업무를 맡게 된 J는 규격에서 벗어나는 원형의 모습에 당황한다. 마음을 추스르고 평소 하던 방식을 시도해 보지만 시스템의 에러로 진퇴양난에 빠진다. 그 순간 J는 자신이 형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습관과 관습이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영상 초반부는 2023년 4월경에 출시하는 ‘미쿠’ 피규어에 대한 홍보 문구이며 마지막 구매 장면과 벚꽃이 피어 있는 풍경은 2022년 5월에 촬영된 과거의 장면이다. 시간 순서가 역순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루프 되는 영상의 상영 구조와 엔지니어J의 상황에서 선형적 시간 구조에서 벗어나 전후의 인과성을 파악할 수 없는 돌고 돌면서 뒤얽힌 관계성을 지향한다. 영어 자막의 경우 단어의 배열보다 전체 문단의 형태에 맞춰 줄 바꿈이 되어 있다.
2022년 YPC 스페이스에서 진행된 이 전시는 시각문화 이미지에 현실의 제약이 관계하는 방식을 질문한다. 오늘날 CG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각 이미지는 세계를 점점 더 정교하게 그려낼 수 있게 되었지만, 무한한 가공 가능성 아래 결함 없이 완벽하게 형상된 리얼리티는 오히려 한계로 가득한 실제의 세계와 괴리된다. 《괴·수·인 Kai·Ju·People》은 여러 현실적 한계를 수용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특수한 제작의 문법을 갖게 된 영상 장르인 ‘특촬’의 방법론을 참조 삼는다. 추상적인 상태가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탐구하는 하카세 박사의 과학 방송과 공간을 점유할 때의 물리적 조건을 반영한 조형물들은 현실의 제약을 수용하여 리얼리티를 보존하는 방법론을 모색한다.
이 영상은 크게 2개의 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진품 피규어를 사용해 열화된 ‘짝퉁 피규어’로 다시 제작하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2000년대 초반까지 유행한 DVD플레이어의 화면보호기 방식으로 화면을 유영하는 자막이다. 영문 내레이션의 목소리를 통해 브라운관 TV를 구매하게 된 화자의 담담한 감상과 열화 복제 사회에 대한 향수를 청취하게 된다.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된《Portrait Fist》는 오늘날 ‘얼굴’의 이미지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소비하는지 탐구한다. 실제 인물, 배우의 초상, 가상의 캐릭터나 고도로 기호화된 도상 등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얼굴을 마주한다. 우리는 얼굴로부터 낯익은 정도, 개인의 신분이나 국적, 심지어 정치적 입장이나 지난 삶의 여정과 운명을 판단한다. 뿐만 아니라 유난히 눈이 커다란 캐릭터의 모습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무생물의 파사드에서 표정을 읽을 수도 있다. 이처럼 얼굴의 이미지, 혹은 우리가 ‘얼굴’이라 부르는 이미지는 신체의 일부 그 이상으로, 항상 무언가를 대신하는 묘한 위치에 서 있다. 《Portrait Fist》는 제목에서 지향하는 바처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용하고 이용당하는 얼굴이 가진 힘에 대한 이야기이자 오늘날 얼굴이라 불리는 초상의 이미지가 어떻게 사물화하면서 다른 대상을 견인하는지를 피규어라는 상태로 탐구한다.
2019년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진행된 전시로 ‘형태를 만끽하는 상점’을 뜻하는 제목처럼 소규모 상점의 모습을 빌려온 작업이다. 마치 테트리스 조각처럼 5개로 분할된 구조물들은 각각 독립적인 형태의 조각으로 봐도 좋다. 유리 진열장 안에 배열된 다양한 피규어와 조형물은 ‘제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반영한다. “직접 만드신 거예요?”란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에 항상 곤란하다. 밀키트는 요리라 불러도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면 요리와 요리가 아닌 것의 경계는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이 전시는 이런 생각을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한다.